뉴욕서 만난 한대수 "내 마음은 공허의 태풍, 떠난 옥사나 그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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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 전 부인상…장례식서 반전·평화 외친 건 러시아전 때문

"할 일은 딸을 잘 키우는 것…삶의 고통과 함께 사는 법 배워야"

미국 뉴욕의 세인트 토마스 교회에서 기도하는 한대수
미국 뉴욕의 세인트 토마스 교회에서 기도하는 한대수

(뉴욕=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포크 록의 대부' 한대수가 지난달 2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웨스트 53번가에 있는 세인트 토마스 교회에서 최근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mimi@yna.co.kr

(뉴욕=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아내) 옥사나를 위한 기도를 하고 가야겠어요."

미국 뉴욕에 사는 '포크 록의 전설' 한대수(76)는 지난달 26일(이하 현지시간) 맨해튼의 웨스트 53번가를 함께 걷다가 세인트 토마스 교회에 들렀다 가자고 했다. 고딕 양식의 이 교회는 한대수가 젊은 날부터 마음이 지치고 외로울 때마다 찾던 곳이다.

그는 1달러 하는 초를 켜고서 5월 30일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몽골계 러시아인 아내 옥사나 알페로바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저희에게 많은 동정과 위로와 사랑을 주십시오. (딸) 양호는 너무 슬퍼합니다. 저도 노인으로서 옥사나가 그립고 너무 슬픕니다. 하지만 양호와 제가 서로 힘이 되어 부축하고 격려하면서 이 인생을 오래오래 행복하게, 옥사나를 위해서라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비옵나이다. 옥사나, 양호와 제가 사랑합니다."

옥사나의 장례식 때 "노 모어 워, 피스!"(No More War, Peace!)라고 반전(反戰)을 외쳤던 그는 "전쟁과 죽음이 많은 이 세상, 정말 평화가 이뤄지길 간절히 빈다"고도 기도했다.

교회 계단을 내려오는 길, 깊은숨을 내쉰 그는 "무척 힘들었는데 조금은 위로가 된다"고 나직이 말했다.

미국 뉴욕에서 만난 '포크 록의 전설' 한대수
미국 뉴욕에서 만난 '포크 록의 전설' 한대수

(뉴욕=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한 달여 전 아내 옥사나를 떠나보낸 한대수가 지난달 자택이 있는 퀸스의 거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mimi@yna.co.kr

한대수는 1988년 첫 부인과 이혼한 뒤 뉴욕에서 옥사나와 만나 2개월 만인 1992년 결혼했다. 뉴욕 브루클린의 아파트에 방을 구하러 갔는데 그 집에 옥사나가 살고 있었다. 2004년 아내와 한국에 정착한 그는 2007년 환갑이 다 돼 양호를 얻었다. 2006년에는 아내의 여체를 재킷에 담은 앨범 '욕망'(欲望)을 발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12년 만인 2016년 한대수 가족은 뉴욕으로 이주했다. 딸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고,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였다. 뉴욕은 한대수가 초등학교 때부터 1968년 귀국해 국내 쎄시봉 무대에 서기 전까지 청년기 대부분을 보낸 도시다. 다시 뉴욕으로 갈 때 초등학교 3학년이던 딸은 어느덧 고등학교를 마쳤다. 양호는 맨해튼의 수영장에서 파트 타임 라이프가드(안전요원)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한대수(왼쪽)와 아내 옥사나 알페로바
한대수(왼쪽)와 아내 옥사나 알페로바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한국 포크록의 전설' 한대수와 부인 옥사나 알페로바가 2015년 12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창작촌에서 진행된 1989년 발표곡 '원 데이'(One Day) 뮤직비디오 촬영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2015.12.14 jin9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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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마주 앉은 한대수는 메모지에 '공허의 회오리바람'(Whirlwind of emptiness), '심장마비'(Heart attack)라고 적었다.

"옥사나와 33년을 함께 했어요. 제 마음은 지금 '공허의 태풍'이에요. 텅 비었죠. 옥사나가 최근 3년 정도 척추, 폐 등 몸이 많이 안 좋았는데 병원도 가지 않았어요."

그는 "더 슬픈 건, 모스크바에서 5달러 들고 뉴욕에 온 옥사나가 베이비시터부터 시작해 나중에 월스트리트에서도 일한 멋진 여성이었다는 점"이라며 "알코올 의존증을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아까운 여인이 스러졌다"고 쉰 음성으로 말했다.

한대수는 자택이 있는 퀸스와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묘지에 눈물로 아내의 유골함을 묻었다. 마지막 노래를 불러주고 싶어 '투 옥사나(오 마이 러브)'를 골랐다. 20대 때 만들어 옥사나를 만나며 바쳤던 곡으로, 프러포즈 때처럼 기타를 연주하며 '아이 니드 유'(I need you)라고 절절하게 노래했다. 그러나 그는 양호의 통곡에 2절까진 부르지도 못했다. 유골함에는 '마이러브, 유어 무슈(러시아어로 남편)'라고 적었다.

지난달 10일 뉴욕에서 열린 아내 옥사나의 장례식에서 추모곡을 부르는 한대수
지난달 10일 뉴욕에서 열린 아내 옥사나의 장례식에서 추모곡을 부르는 한대수

[photos by rich scarpitta 2024, 재판매 및 DB 금지]

한대수는 "양호가 엄마는 '베스트 프렌드'라고 우는 데 울컥해서 노래가 안 나왔다"며 "양호는 '엄마 그리워, 보고 싶어. 아직도 집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아'라고 한다. 이제 양호 대학을 보내는 게 숙제다. 양호가 대학에 가면 옥사나와 한국에 돌아가려 했지만, 이젠 뉴욕에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평소 반전, 세계 평화를 외치는 그지만 장례식에서 이를 언급한 이유도 있었다.

"옥사나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관련 뉴스에 빠져 있었어요. 저와 견해차가 있었고 한동안 대화하기 어려웠죠. 전쟁이 가족의 소통까지 어렵게 했어요. 그래도 1~2년 후엔 더 좋은 엄마, 부인이 될 거란 희망이 있었는데 끝이 됐네요. 삶이 있어야 미래를 생각하니까요."

아내 옥사나의 장례식에서 유골함에 메시지를 쓰는 한대수(왼쪽)와 딸 양호
아내 옥사나의 장례식에서 유골함에 메시지를 쓰는 한대수(왼쪽)와 딸 양호

[photos by rich scarpitta 2024. 재판매 및 DB 금지]

동반자를 잃고 수척해진 그는 평탄하지 않은 가족사에서 출발한 로큰롤 인생을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곧잘 "예전에도 지금도 '디스펑셔널 패밀리'(Dysfunctional family)지만, 그래도 우린 가족"이라고 말하곤 했다. 서울대 공대생이던 아버지는 미국으로 유학 간 뒤 실종됐고 그는 조부모 손에 자랐다. 미국에서 한국어를 잊어버린 채 백인 여성과 재혼한 아버지를 찾은 건 17살 때다. 그 사이 어머니도 재가했다. 고1 때 아버지가 있는 롱아일랜드에서 살던 시절의 외로움을 응축한 곡이 1집(1974)의 '바람과 나'다. '물 좀 주소'와 '행복의 나라'가 함께 담긴 1집은 태평양을 오가며 산 그의 결핍과 설움, 불안을 자유와 희망으로 치환한 앨범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히피 문화'의 상징이 되며 금지곡이 되는 고초도 겪었다.

한대수는 "미국 엄마의 딸이 지난해 '대수야, 아버지 물건이 있다'면서 책 3권을 줬다. 출판은 하지 않고 타자로만 찍어둔 건데, 겁이 나서 안 읽었다. 아버지에 대해선 여전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있다"고 했다.

한대수와 어린 시절의 딸 양호
한대수와 어린 시절의 딸 양호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타임스스퀘어 인근 역까지 함께 걸어가던 그는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소녀가 구걸하고 있자 달러를 건넸다.

"거리의 어린아이들을 만나면 마음이 너무 안 좋아요. 삶은 고통이죠. 우리가 고통을 없앨 수는 없으니, 고통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겠죠."

그는 요즘 아내의 유품을 계속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 소유욕이 강했던 옥사나는 김치통과 종이봉투까지 차곡차곡 모으곤 했다. 휴대전화로 양호의 귀가를 확인한 그는 "이제 내가 할 일은 양호를 잘 키우는 일"이라고 거듭 말했다. "인생은 '아이 돈트 노'(I don't know), 크하하." 그는 헤어지며 그래도 웃어 보였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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